[부산] 범내골 썩은다리 명태집 딸

2023. 4. 4. 23:02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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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범내골이라는 동네가 있다.
현재의 범일동이라고 부르는 동네의 바로 옆 동네로, 엄연히 두 곳이 구분이 되어 있는데,
범일동의 옛 지명이 본래는 모두 범내골로 한 동네였던 것이 지금에 와서 따로 나뉘게 되었다.
 
호랑이 냇가(호천 虎川 / 범천 凡川)를 뜻하는 순우리말인 '범내'에서 유래했는데,
이 동네가 수정산 끝자락에 있는 골짜기 동네이기 때문에 예전에 이곳을 흐르던 냇가나 골짜기를 일컫는 말에서 동네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 부산에서 부르는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이 모두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옛 범내골 지명에서 파생된 동네가 분명해 보인다.
 
골짜기가 끝나고, 문현동과 이어지는 나지막한 평지가 나타나는 곳에 작은 강이 하나 흐르는데,
범내골 골짜기를 지나 흘러내린 물이 이곳 '동천'으로 모였다가 부산 앞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호랑이 냇가, 범내골은 이런 호기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동네이자 내 어릴적 추억이 서린 동네이기도 하다.
 

이곳에 강을 건너는 몇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저기 우측으로 이마트가 보이는 이 다리가 바로 썩은다리라고 부르는 무지개다리이다.
어릴 때에는 무지개다리라는 이름은 모르고 있었고
친구들끼리는 썩은다리라고 많이 불렀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다리가 곧 무너질 것처럼 굉장히 허술했는데
지금은 튼튼하게 다시 지어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이곳에 부산시민들만 아는 먹자골목(묵자골목)이 펼쳐져 있다.
학창 시절에 내가 살던 곳과 가깝기도 하고,
또 내가 20살이 되었던 해의 1월에,
내 아버지랑 이곳 어느 노포에 앉아서 처음으로 막걸리를 한 잔 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라 많은 추억이 서린 골목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부산 시민들이 잊지 않고 계속 찾아주고 있어서
이 동네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말 저렴하면서도 맛이 끝내주는 안주와 요깃거리를 맛볼 수 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귀갓길에 잠시 들러 지인들과 수다를 나누기도 좋고,
주말 늦게까지 늦잠을 자다가 저녁에 모임을 만들어 간단하게 식사와 막걸리를 한 잔 하기도 참 좋은 장소이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에나 이런 사람 사는 이야기와 냄새가 있는 노포를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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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과일도 있고,
실비라고 써둔 실내포차도 많이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는데
지금 보니 젊은 사람들도 참 많이 찾고 있어서 동네가 활기를 띄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곳에 참 오랜만에 왔다 싶었다.
코로나 시국 훨씬도 더 전에 다녀갔으니, 정말 오랜만에 왔다.
 

이 길지 않은 골목에 참 많은 가게들이 놓여 있는데,
그중에 '조방숯불곱창'이 가장 인기가 많아 보였다.
착한 가격으로 숯불 곱창을 맛볼 수 있어서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일행의 목적지는 따로 있었다.
 

이름부터가 너무 맘에 든다.
누구네 딸인지, 참 가게 이름을 너무 잘 지었다.
 

명태집 딸

 
이곳은 나도 처음 찾아왔다.
같이 온 지인이 강력히 추천을 했는데 가격은 물론이고 맛도 정말 맘에 들 것이라며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포차가 좋은 것은 다양한 안주를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최근 술을 끊고 있어서, 술자리에 가면 안주만 축내는 것이 참 미안했었는데
이런 포차에 오게 되면 그런 걱정을 잠시 덜어둬도 될 것 같았다.
 

이 가격,
2023년 4월 현재를 살아가는 가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이 작은 포차에서 이 많은 메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부담 없이 1인 1 메뉴를 골라서 주문을 했다.
 

포차에 가면 자주 먹는 치즈계란말이
엄청 큰 계란이 케첩 옷을 입고 나타났다.
 
위장을 달래고 허기진 속을 채우기에 딱이었다.
 

포차에서 가능할까 싶은, 대구 맑은탕(지리탕)이다.
딱 봐도 알겠지만, 고급진 식당에 가서 대구탕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맛 좋은 대구탕을 맛볼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코스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게 안은 빈자리 없이 손님으로 가득했는데,
사장님이 하나하나 메뉴를 나누어 시켜도 참 친절하게 웃으며 음식들을 준비해 주셨다.
 
성격이 너무 좋은 명태집 딸 사장님이셨다.
 

저기 사장님 모습
정말 유쾌하신 사장님이셨다.
그러니 가게에 손님도 많고 음식도 맛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맛 좋은 안주를 눈앞에 두고
술은 한 잔도 마시지 않은 채 술을 한가득 마신 것처럼 즐겁게 웃고 떠들고 추억을 쌓았다.
 

배부르게 먹고 나오는데 전당포가 보였다.
정말 오래된 동네라는 것이 다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왠지 배우 원빈이 앉아 있을 것 같은 전당포 모습이었다.
이제 주변에서 전당포를 만나는 것도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골목이 참 맘에 든다.
 
오랜만에 편하게 지인들과 원 없이 얘기하고 웃고 떠드느라 후련한 저녁을 보낸 것 같았다.
다음 부산 방문 때에도 여기를 가자고 얘기를 해볼 참이다.
 
그 정도로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도 참 좋은 포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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